국내 채굴장이 많이 사라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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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라이엇 블록체인(Riot Blockchain, RIOT) 웹사이트 캡처출처=라이엇 블록체인(Riot Blockchain, RIOT) 웹사이트 캡처

지난 2017년은 암호화폐 시장의 호황과 함께 '채굴 붐'이 일던 시기였다. 그러나 2018년 이후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국내에서는 어느 순간 채굴과 관련한 소식을 접하기 어려워졌다.

올해 코인 가격이 오르면서 채굴 열풍이 다시 일었다고는 하지만, 해외처럼 대규모로 채굴을 가동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암호화폐 시가총액 1위인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국내 채굴자는 사실상 종적을 감췄다. 왜 국내 채굴자들은 비트코인이 암호화폐 가운데 장기적으로 가장 투자 가치가 있다고 평가 받음에도 채굴을 하지 않게 된 것일까. 코인데스크코리아가 전현직 국내 채굴자 3명을 인터뷰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2018년 이후 수많은 국내 채굴장이 문을 닫았다"

국내 블록체인 커뮤니티인 땡글에서 '안씨아저씨'라는 닉네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안규태씨는 지난 2016년 채굴업체인 트러스트팜을 설립했다. 그는 회사 설립 이후 200대 규모의 비트코인과 알트코인 채굴장을 운영했다. 채굴장 사업은 당시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공유 채굴 형태로 이어나갔다.

공유 채굴이란 다른 사람과 채굴장 공간을 함께 쓰고 채굴기를 공동으로 가동하는 방식을 뜻한다. 채굴장을 직접 매입한 뒤 다른 사람에게 공간을 임대하는 식으로 공유 채굴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안씨는 채굴장을 임대인에게 빌리고 다른 사람과 공동 임차하는 방식을 취했다.       

잘나가던 암호화폐 채굴장이 어려워진 것은 시장에 겨울이 불어닥친 2018년 이후였다. 통상 채굴장이 지속적으로 운영되려면 채굴 수익이 고정 비용인 전기료, 인건비, 채굴장 임대료를 넘어서야 한다.

곧, 채산성이 좋아야 한다는 얘기다. 2017년까지는 이 선순환 구조가 잘 유지됐지만, 2018년 이후부터는 채굴 수익이 급감하고 고정 비용이 늘어나 적자를 봐야 했다.

결국 안씨는 2018년을 기점으로 채굴장 사업을 접고 채굴기 판매와 채굴과 관련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쪽으로 업종을 바꿨다. 그는 "2018년 당시 체감상 90% 이상의 국내 채굴장이 문을 닫았다"며 "채굴기 구매 비용보다는 지속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인프라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씨에 따르면 당시 1000여곳이 넘는 채굴장이 폐업했다.   

안규태씨가 한때 운영했던 채굴장의 모습. 출처=트러스트팜안규태씨가 한때 운영했던 채굴장의 모습. 출처=트러스트팜

익명을 요청한 B씨와 C씨의 상황도 비슷했다. B씨는 지난 2014년 비트코인 채굴장을 운영하면서 채굴기 대수를 5000대까지 늘린 채굴업체의 대표였다. 이후 공유 채굴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비트코인 뿐만 아니라 각종 알트코인 채굴도 병행했다. 알트코인 채굴기를 합한 채굴기 대수는 2만 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규모로 보면 안씨보다 더 크게 사업을 운영했던 셈이다.

그러나 B씨 역시 2018년 침체기를 버티지 못했다. 결국 그의 사업은 부도가 나고 말았다. 2021년 5월 18일 현재는 50여대의 알트코인 채굴기만을 개인적으로 가동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채굴장 사업을 크게 했다가 하락장 때 부메랑 효과를 맞아 사업을 빨리 접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밝혔다.

C씨의 경우에는 채굴장 사업을 지난 2018년에 시작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는 2018년에 비트코인 채굴 위주로 1000대의 채굴기를 운영했지만, 2021년 5월 18일 현재는 약 60대의 알트코인 채굴기만 가동하고 있다.

그는 "하락장에 사업을 미리 다져놓으면 수익이 클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채산성이 장기간 나오지 않아 흐름에 맞는 알트코인 채굴로 사업을 축소하게 됐다"고 전했다.     

 

국내 비트코인 채굴이 사라진 이유①: ASIC 채굴기의 등장 

현재 이들은 비트코인 채굴을 모두 접은 상태다. 안씨는 채굴기 판매 및 솔루션 제공 사업으로 업종을 전환했고, B씨와 C씨는 알트코인 채굴기만 소규모로 운용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주위에 있는 국내 채굴자들도 채굴 사업을 아예 접었거나 이더리움을 비롯한 알트코인 채굴만 한다고 전했다. 최근 국내 채굴업자를 인터뷰한 기사도 비트코인이 아닌 알트코인 채굴자 대상이었다.

알트코인의 채굴이 비교적 쉽다고 하더라도, 전업 채굴자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작은 비트코인 채굴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이들은 왜 비트코인 채굴을 접게 된 것일까. 

3명의 취재원들은 모두 주문형 반도체(ASIC) 채굴기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나오면서 비트코인 채굴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ASIC 채굴기는 오로지 채굴을 목적으로 생산되는 특수한 채굴기다. 

B씨는 "ASIC 채굴기를 매입해서 비트코인 채굴을 해본 적도 있었지만, ASIC은 1년 정도 사용하면 신형 채굴기가 나와 기존 구형의 경쟁력이 없어지는 리스크가 존재했다"며 "규모가 굉장히 큰 업체가 아닌 이상, 일반 채굴자들이 비트코인 채굴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초기 비용 자체도 ASIC 채굴기가 훨씬 많이 들기 때문에 알트코인 채굴 쪽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안씨에 따르면 5월 중순 기준으로 신형 ASIC은 대당 최소 1000만원 이상을 호가하지만, GPU 채굴기는 비싸도 대당 200만원을 넘지 않는다. 이마저도 ASIC은 공급 부족으로 매물 자체를 구하기 매우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비트메인의 ASIC 채굴기인 앤트마이너 S19j 모델.출처=비트메인 웹페이지비트메인의 ASIC 채굴기인 앤트마이너 S19j 모델.출처=비트메인 웹페이지

통상 비트코인을 제외한 알트코인 채굴은 그래픽카드(GPU)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 등으로 이뤄진다. 비트코인 채굴에서는 ASIC 채굴기가 제한 없이 허용되지만, 이더리움 등의 알트코인에서는 채굴 독식 우려로 ASIC 채굴이 어려운 알고리즘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채굴자들 사이에서 ASIC은 비트코인 전용 채굴기로 인식된다. 최근 그래픽카드 가격의 급등도 사실상 비트코인 채굴이 아니라 알트코인 채굴 붐이 일어난 데 따른 결과다. 

안씨는 "ASIC은 채굴 용도로만 사용되기 때문에 오로지 채산성으로만 시세가 형성된다"며 "이와 같은 시세 형성은 개인 채굴자에겐 부담으로 작용해 ASIC은 B2C가 아닌 B2B 시장이 따로 만들어져 있을 정도다"라고 전했다. 

 

국내 비트코인 채굴이 사라진 이유②: 규제 불확실성·채산성 부족 

ASIC의 등장은 분명 비트코인 채굴에 진입장벽을 가져다 줬다. 그러나 ASIC은 세계 곳곳에 유통되는 채굴기다. 국내에만 ASIC 허들이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이들은 주요 채굴 국가로 분류되는 중국, 미국, 중앙아시아, 러시아 등에 비해 국내의 채굴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비트코인 채굴이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C씨는 "한국은 비트코인 채굴에 우호적인 중앙아시아 등지 나라들에 비해 규제 불확실성이 강하다"라며 "그렇다고 중국처럼 특정 지역의 전기료가 싼 것도 아니라서 이미 그 자체로 진입장벽이 존재하는 비트코인 채굴은 여러모로 적합하지 않다"고 전했다.

실제로 중앙아시아 가운데서도 채굴 산업에 우호적으로 알려져 있는 카자흐스탄은 지난해 6월 정부 차원에서 3년간 암호화폐와 채굴에 7억3840만 달러를 투자할 계획을 세우는 등, 채굴친화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국은 최근 채굴장 폐쇄를 발표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지만, 오랫동안 쓰촨성, 네이멍구 등에서 값싼 전기료 덕분에 채굴업이 성행했다. 미국은 비트코인 채굴업체인 라이엇 블록체인이 나스닥 상장사로 등록돼 있는 등, 채굴업체를 양지에서 관리하고 있다. 

안씨는 "개인적으로 비트코인 채굴은 4차 산업의 1차 산업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는 입장에서 (국내의 규제 불명확성은) 아쉬운 측면이 있다"며 "어차피 전기라는 게 저장이 어렵다보니 잉여 전기가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측면이 있는데, 국내 차원에서 이 전기를 비트코인 채굴로 돌리는 식의 정책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채굴도 시간대나 계절에 따라 전기료가 천차만별이라서 이를 공략해 잉여전기에 대한 채산성을 극대화하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편 최근 비트코인 채굴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쳐 각국이 규제에 나설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안대표는 "세계 주요 채굴 지역으로 인식되는 쓰촨만 하더라도 최근 공해 논쟁과는 관련 없는 수력 발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최근에는 미국 등지에서 태양광 에너지를 이용해 비트코인을 채굴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비트코인 채굴 규모에 따른 태양광 에너지 활용도 비교. 출처=아크 인베스트먼트비트코인 채굴 규모에 따른 태양광 에너지 활용도 비교. 출처=아크 인베스트먼트

실제로 미국 자산운용사인 아크 인베스트먼트는 태양광 발전에 배터리 기술을 접목하여 비트코인 채굴을 하는 경우, 에너지 활용도를 40%에서 90% 이상까지 증가시킬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비트코인 채굴에 따른 부가 수입이 태양광 발전 비용을 낮춰 친환경 에너지 발전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25일에는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북미 채굴업체와 에너지 사용의 투명성을 높이고, 이에 대한 보고를 표준화하는 '비트코인채굴협의회'의 결성을 논의하기도 했다. 

 

국내 비트코인 채굴이 사라진 이유③: 수요의 문제  

국내의 낮은 비트코인 채굴 수요와 높은 암호화폐 투자 수요는 김치 프리미엄의 형성에 기여한다. 김치 프리미엄이란 비트코인을 비롯한 다른 암호화폐의 국내외 가격차이를 말한다. 지난 4월 7일에는 비트코인의 김치 프리미엄이 약 21% 수준을 넘어섰다가 순식간에 10%나 폭락했다. 

일반적으로 김치 프리미엄의 상승은 시장 호황기에 일어난다. 이때 국내 암호화폐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김치 프리미엄의 해소는 공급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국내의 경우 뾰족한 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외국과의 암호화폐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거나 채굴을 통한 꾸준한 공급 창출이 일어나야 하는데, 국내는 두 가지 수가 모두 막혀있다. 

이러한 문제는 '암호화폐의 대장' 역할을 하는 비트코인의 공급 창출이 원활하게 이뤄진다면 해결될 수 있다. 실제로 암호화폐 시장은 비트코인의 가격 흐름에 따라 나머지 알트코인이 강한 동조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국내 비트코인 채굴이 전멸한 현재 수준에서는 김치 프리미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인터뷰에 참여한 취재원들은 국내의 열악한 채굴 환경에도 불구하고 규제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채산성 문제가 해결된다면, 비트코인 채굴은 대내외적으로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현재 국내 상황에서는 현실적으로 알트코인 채굴이 더 효율적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안씨는 "ASIC은 판매 시기를 잡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내 수요 자체가 없기 때문에 되팔기가 굉장히 어렵다"며 "반면 알트코인 채굴기는 상대적으로 수요가 많고 대부분 GPU를 기반으로 해서 채굴 목적이 아니더라도 판매 채널이 있다는 장점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의 경우 해외로 신형 ASIC 채굴기가 판매되기 이전에 중국인들이 집단 구매를 하고, 그 채굴기를 바로 되파는 시장까지 형성돼 있다"며 "반면 한국은 이러한 시장 자체가 미비하기 때문에 비트코인 채굴 수요가 형성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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